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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론] 더욱 교묘해진 중국의 한국사 왜곡

중국국가박물관의 ‘한국 고대사 연표 왜곡’ 사건이 최근 한국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그동안 한·중·일 3국은 상호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2년마다 공동 전시회를 개최해왔다. 올해는 한·중 수교 30주년과 중·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중국국가박물관이 지난 7월 26일 ‘동방의 상서로운 금속(東方吉金): 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을 개막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물과 함께 고구려와 발해가 포함된 연표〈표 오른쪽〉를 제공했는데, 중국은 이 부분을 임의로 삭제한 한국 고대사 연표〈왼쪽〉를 전시했다. 상대국이 제공한 자료를 중국 측이 제멋대로 수정했다는 점에서 이는 명백한 국제 규범 위반이다. 다만 국립중앙박물관도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중국의 역사 왜곡 행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무리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라 하더라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주중 대사관 등을 통해 치밀하게 현장을 미리 점검했어야 했다. 중국이 국제 규범을 지키리라 믿었던 것 같은데, 중국은 국제적 신의를 저버리고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의도에 따라 이번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접하며 중국이 2002~ 2007년 추진한 ‘동북공정’을 떠올린 이들이 많을 것이다. 동북공정의 이론적 토대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다. 중국은 1949년 10월 정부 수립과 함께 많은 소수 민족을 편입했다. 중원 왕조만 중국사로 설정하는 종전의 화이론(華夷論)에 따른다면 수많은 소수 민족의 역사를 독립 역사로 다뤄야 했다. 이 때문에 중국은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중국사의 범주를 설정하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고안한 뒤 무수한 소수 민족의 역사를 중국사로 편입했다.   다만 중국은 1980년대까지는 북·중 관계를 고려해 고구려사를 조선사(한국사)로 인정했다. 그런데 1990년대 북한이 체제 위기로 내몰리자 고구려사에도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적용해 중국사로 편입하는 동북공정을 추진했다. 이때 중국은 정부의 지원 아래 고구려사 관련 연구소를 대거 설치하고 전문가를 양성해 연구 기반을 다졌다. 중국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고구려사 왜곡을 그만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 상황은 어떠한가. 2003년 동북공정이 알려지며 중국의 역사 왜곡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교육부는 2004년 초 고구려연구재단(2006년 현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통합)을 설립하며 대응했다. 그해 8월 한·중 양국 외교부는 5개 항으로 된 구두 합의를 발표했다. 그런데 한·중 외교 마찰이 잠잠해지자 사회적 관심이 줄어들었고, 정부 지원도 대폭 축소됐다.   고구려연구재단에서 예닐곱을 헤아리던 고구려 전공자가 지금 동북아역사재단에는 2명만 남았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재단 예산은 30%가량 삭감됐다니 연구원이 퇴직해도 충원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 측의 대응 역량이 이 정도라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중국의 역사 도발에 속수무책으로 또 당할 것이다. 정부 여당이든 거대 야당이든 정기국회에서 재단 예산을 원상 복구하고, 재단은 연구 인력을 충원해 대응 역량을 충분히 갖춰야 할 것이다.   차제에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은 국립고구려박물관을 건립하기를 제안한다. 아차산 일대나 임진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을 잘 활용하면 야외 전시관까지 갖춘 번듯한 박물관을 건립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하면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도 디지털 영상으로 전시할 수 있다. 국립고구려박물관은 세계를 향해 고구려사가 한국사임을 당당하게 알리는 발신처가 될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과 외교부·교육부는 중국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학계·언론계와 협력해 유기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번 사건도 국립중앙박물관과 외교부가 긴밀하게 협조했다면 예방했을 것이다. 중국 측에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답게 행동하라고 엄중히 촉구해야 한다. 시진핑 총서기의 말을 인용해 이번 전시회 개막사에 실린 ‘평등과 호혜의 외교 자세’를 중국이 제대로 지키면 된다. 그 출발점은 상대국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다. 여호규 /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시 론 중국 한국사 고구려사 왜곡 역사 왜곡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

2022-10-02

[시 론] 배트맨, 우리의 가면

 글을 쓸 때 ‘노동요’로 삼는 음악이 있다. 원고 작업은 감흥에 잠기거나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오히려 집필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단조롭고 우울한 곡을 선호한다. 최근에는 영화 ‘더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자주 들었다.   그렇게 새로운 배트맨의 주제가는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을 들었는데, 정작 영화 ‘더 배트맨’은 보지 않았다. 보러 갈까 망설이는 사이에 우리 동네 극장의 상영시간표에서는 이 영화가 사라졌다. 큰 화면으로 볼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그제서야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놈의 우유부단이여. 좋은 평을 받은 모양이던데.   ‘더 배트맨’ 관람을 주저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영화가 너무 길었다. 상영 시간이 2시간 56분이나 된다. 그리고 배트맨 영화를 그간 너무 많이 본 것 같았다. 세어보니 내가 본 배트맨 실사 영화가 10편이나 된다. 어린 시절의 브루스 웨인이 등장하는 ‘조커’까지 포함하면 11편이다.   ‘더 배트맨’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솔직히 반갑다기보다는 ‘아니, 또 배트맨이야?’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배트맨, 물론 매력적인 히어로다. 캐릭터 사업을 펼치기도 좋다. 그런데 사골국도 아니고 도대체 몇 번을 우려먹는 거냐.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어둠의 기사라는 설정도 그만하면 여러 연출자가 온갖 각도로 해석하고 또 재해석하지 않았나.   원고가 안 풀리면 쓸데없는 상념에 잠기게 된다. 배트맨 테마곡을 들으며 배트맨은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인기가 있을까, 왜 사람들은 배트맨에 질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본 원인은 배트맨의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세상이 점점 배트맨이 사는 도시처럼 변하고 있고 우리들이 모두 조금씩 배트맨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수퍼맨이 영화와 만화에서 활약하는 도시는 메트로폴리스다. 이 도시는 가끔 외계인의 습격도 받고 렉스 루터 같은 악당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밝다. 메트로폴리스 시민들은 진취적이며, 자기 도시를 믿고 사랑하는 것 같다. 배트맨의 배경인 고담의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고담은 총체적 난국이다. 범죄와 부패가 심각하고 빈부격차는 폭발 직전이다.   그래서 배트맨은 더러 가엾고 우스워 보인다. 그가 아무리 범죄자를 때려잡아도 고담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게 확실하다. 심지어 배트맨 본인도 그 사실을 아는 듯 보인다. 그는 실패할 운명이다. 그럼에도 싸운다. 그래서 좀 멋있긴 하지만, 그러느니 그 많은 돈을 범죄예방 환경설계 프로젝트나 전과자 재활 사업에 투자하는 편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데 현대인은 자신이 메트로폴리스가 아니라 고담에서 산다고 생각한다. 순수와 희망의 상징인 수퍼맨의 인기가 두어 세대 전부터 시들해진 것은 그 때문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두어 세대 전부터 우리를 사로잡은 정서는 좌절과 분노 아닐까. 밤에 가면을 쓰고 밖에 나가 이 사태의 책임자를 두들겨 패고 싶어 하는 충동들이, 그 냄새가, 느껴지지 않나.   하지만 문명사회에서는 그런 욕망을 인정하는 것조차 위험하다. 그래서 브루스 웨인에게는 박쥐 가면과 망토가 필요하고, 우리에게는 배트맨 영화가 필요하다.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착한 말 정의로운 말만 쓰지만 익명 게시판은 시궁창이다. 모두 조금씩 위선자이고, 조금씩 다크 히어로이며, 조금씩 신경증 환자들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조커의 목적이 뭔지 알 수 없어 무섭다며 너스레를 떠는 이들을 나는 기이하게 여겼다. 그 영화에서 조커는 의도가 분명한 중2병 환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위선자라고 믿었고, 그게 역겹다며 주변 인물을 타락시키고 시민들이 악행을 저지르게 하려고 애썼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약간은 옳았기 때문에 무서웠다.   배트맨은 그래도 고결하다. 그는 자신이 내리막길 위에 있음을 알고 괴로워하며 거기에 저항한다. 불살(不殺) 같은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현대인은 배트맨을 사랑한다, 아직까지는. 그가 우리와 같은 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마블이 얼마 전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한 드라마 ‘문나이트’의 수퍼히어로 문나이트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 정체성, 메타버스 정체성을 따로 만드는 세대에게 어울리는 영웅 같다. 장강명 / 소설가시 론 배트맨 배트맨 영화 배트맨 테마곡 배트맨 실사

2022-04-18

[시 론] ‘비판적 인종이론’과 폭동 30주년

 최근 비판적 인종이론에 대한 찬반 논란이 한인 사회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공화당에서는 비판적 인종이론을 중고교에서 가르치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비판적 인종이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일방적으로 반대하는 학부모가 많다는 것이다.   비판적 인종이론은 이미 대학에서는 보편화되어 가르치고 있다. 특히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UC리버사이드에서는 30여년 전부터 소수인종학이 졸업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있다. 현재 우리 대학의 모든 학생들은 비판적 인종이론을 배우고 있고 대부분의 대학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문제는 중고교에서 비판적 인종이론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해서야 이 이론을 접할 수 있다.   비판적 인종이론의 핵심은 미국 역사, 특히 인종 관련 문제를 백인의 시각이 아닌 소수자의 시각으로 검증하고 재해석하는 것이다.     가령 예전에는 콜럼버스가 미국 대륙을 ‘발견’했다고 가르치면서 공휴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미국 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도착’한 것이다. 이미 수 백만 명의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에는 노예제도를 옹호하면서 백인 농장주들의 일기 등을 인용해 노예들이 만족하면서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흑인 노예들은 고통스러운 삶에서 해방되기 위해 엄청난 저항을 했으며 조직적으로 북부로 탈출하기도 했다.     역사를 소수계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면서 미국 인종 문제의 오해와 진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비판적 사고 방식을 키우게 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목적이다. 비판적 인종이론은 미국의 ‘악’인 인종차별 역사를 비판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백인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적 이론에 대한 찬반이 있을 수 있다. 이론은 현상을 설명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을 가르치면 안 된다는 것은 학문의 자유를 거스르는 것이다.   필자는 비판적 인종이론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이론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캘리포니아주는 모든 고교생들이 소수인종학(ethnic studies)을 졸업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주 한인사 레슨 플랜도 7개나 포함시켰다. 이는 비판적 인종이론이 필수인 소수인종학의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비판적 인종이론은 미국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한인 차세대들이 꼭 접하고 배워야 할 이론이다. 물론 반대 할 수는 있다.     올해는 4·29폭동 30주년이다. 한인 1세대는 비판적 인종이론을 바로 이해해 차세대 교육에 활용해야 한다. 장태한 / UC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장시 론 인종이론 비판 비판적 인종이론 최근 비판적 비판적 사고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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